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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에 대하여

영화를 보다가,,,,적벽대전에 대해서 좀 찾아봤다.
제갈공명이 거의 신격화 되어있는 가운데, 적벽대전은 그의 신끼를 유감없이 발휘한 전투라는 점.
조조가 병신이 되었고, 유비가 기반을 다지게 된 전투라는 점.

그러나, 이 모든게 다 소설인 "삼국지연의"에서만 이렇게 과대포장 되어있는 점.

위의 지도는 적벽이 어느정도 위치에 있는 지를 나타난 지도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적벽대전이 과대포장 되었는지 생각해볼 문제라고 본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에 조조(曹操)가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싸웠던 전투이다. 원소(袁紹)를 무찌르고 화북(華北)을 평정한 조조는 형주목(荊州牧)을 지키고 있는 유표(劉表)를 정복하고 형주땅을 차지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유표의 급사로 손쉽게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강릉으로 달아나는 유비를 추격하였다. 조조군은 장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였고 적벽에서 손권·유비 연합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조군은 손권의 장수 황개(黃蓋)가 화공(火攻) 계략을 세워 전선(戰船)이 불타는 대패를 당하고 화북으로 후퇴했다. 이 결과 손권의 강남 지배가 확정되고 유비도 형주(荊州:湖南省) 서부에 세력을 얻어 천하 3분의 형세가 확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적벽대전 [赤壁大戰] (두산백과)

아무런 근거지가 없던 유비가 천하 3분의 형세가 확정되었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데, 이 부분을 나타내기 위한 뭔가 다이나믹하고 거창한 전투가 필요한 것이다.

그 근거로써, 적벽대전 만한 것이 없다고 소설가인 나관중은 판단을 했고,
적벽대전을 삼국 전투가운데 가장 크게 포장을 하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적벽대전을 두고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 정사에 남은 기록이 짧고 모호하여 적벽대전의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힘들고 명나라 때의 인물인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연의》에서 실제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지어낸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당시에 장강 적벽에서 벌어진 전투를 두고 오해가 생기가 되었다. 적벽대전을 두고 《삼국지연의》의 내용과 이견을 보이는 점은,

첫 번째 적벽대전은 조조가 유비를 죽이기 위해 기병 5천으로 추격하다가 벌어진 소규모 전투에 불과했다.

두 번째 조조는 유비를 처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손권을 치고 오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었다.

세 번째 실제 전투를 벌인 시간과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하지 않다.

네 번째 조조의 군선에 불을 지른 사람이 누구인가?

이런 점들이 현재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이견이 존재하는 상태이다. 한편 일부 중국의 학자들은 적벽대전은 적벽이 아닌 후베이성 오림(烏林)에서 벌어진 오림대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적벽보다는 오림이 당시의 전투들이 벌어지기에 더 알맞은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연합군은 조조의 남방 제패의 야심을 분쇄했으며, 이 싸움을 계기로 조조의 세력은 위축되고 유비와 손권의 세력이 확장되었다. 결국 3자는 천하를 삼분하여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가 문자 그대로 솥발처럼 정립(鼎立)하는 삼국시대를 열었으며, 다시 그들끼리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다가 280년 위나라의 사마염에 의해 진(晋)나라로 통일을 이루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적벽대전 - 화공작전으로 조조의 대군 격파(208년) (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2010. 7. 16., 가람기획)
[네이버 지식백과] 적벽대전 [赤壁大戰] (두산백과)

우리는 단지 소설에 의해서 왜곡된 역사관을 갖게 된 것이며, 현 시대에는
수 많은 자료로 인해서 소설로 알고 있어도 좋지만,
심하게 왜곡이 되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글은 나무위키에 더욱 더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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